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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4년 10월 5일 주일낮설교(위대한 생각!)

2014년 10월 5일 주일낮설교(위대한 생각!)

위대한 생각!

10. 5, 2014

本文:히브리서3:1-4

說敎:崔 仁 根 牧 師

영국 속담에 "생각이 좁은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은 그만큼 한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의 생각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기록해 두셨습니다.

(잠24: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

(롬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시94:11)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의해 놓으신 우리 인생들의 생각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고 말입니다. 한번 쯤 가슴에 새겨 두고 묵상해 볼 만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다가 우리들의 생각을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신다면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생각을 지켜주시는 것이 참으로 복된 축복이라는 사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말씀들을 중심으로 생각의 계절 가을의 중턱에서 "생각"에 관한 말씀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귀한 말씀에 귀 기울이시고 깊은 사색에 잠겨 우리들의 생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생각!

생각이 그 사람입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고 말했습니다. 솔로몬도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 스마일즈는 "생각을 심으십시오. 행동을 거둘 것입니다. 행동을 심으십시오. 성격을 거둘 것입니다. 성격을 심으십시오. 신의를 받아 드릴 것입니다. 생각을 기르십시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오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 했습니다.

생각은 그 사람을 움직이는 지렛대입니다. 자동차의 기아는 그 자동차의 방향을 움직이는 시작입니다. 1단을 넣으면 1단으로 갑니다. 뒤로 기아를 넣으면 뒤로 갑니다. 기아대로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생각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바로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그 사람의 모두입니다. 어떤 사람이 호텔방을 빌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밤에 정전이 되어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자 몹시 더웠습니다. 그는 잠결에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는 것이, 그만 유리창을 깨뜨렸습니다.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 닥치는 것 같아 잠을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창문은 꽁꽁 잠겨 있고, 어항을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원하게 잘 잤습니다. 정말 시원해서 시원하게 잘 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문이 깨졌으니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잠을 잘 자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힘입니다.

중국말에 忘梅之渴(망매지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면서 침을 내어 목마름을 일시 면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실제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지고 그 행동이 모여서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은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의미로 다음과 같은 비유를 기록해 두셨습니다.

(눅16:1-8)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말씀의 포인트는 위기의 때에 지혜로운 생각으로 지혜롭게 처신하여 오히려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남의 재산을 가지고 자기의 처세술에 이용한 이것이 어떻게 지혜롭다고 칭찬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 비유의 포인트는 도덕적인 차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고 미래를 어떻게 대비할 줄 아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생각의 발상을 바꾸어 오늘보다는 내일을 대비하고 육신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칭찬하시고 인정하시는 올바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우리들의 생각의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진정한 변화의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소중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함께 듣고 배워서 생각의 변화로 삶의 변화와 믿음과 축복의 변화 또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참으로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생각이라는 차원에서 이 말씀은 "모든 생각의 바탕에 예수님을 기본으로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든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령 가슴에 분노와 미움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을 때, 잠시만 한 번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시라면 이 순간에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마도 우리들이 가지는 그 생각보다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과 우리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성경에 똑부러지게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사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 말입니다. 순간의 분노와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평생을 감옥에서 후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9월30일)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가족(3명) 살인 사건도 이런 부류의 살인이었습니다. 34살밖에 안 된 김 모씨는 이혼녀인 41세의 권모여인과 교제를 하다가 권 씨가 더 이상 교제를 원하지 않고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꽃을 한 아름 들고 아파트로 찾아가 권 씨를 목 졸라 살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딸 집으로 찾아 온 68세의 어머니를 또한 살해하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 온 13살 먹은 딸도 그렇게 살해한 다음 도당 갔다가 경찰에 붙잡힌 것입니다. 그가 만약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거나 조금만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면 이처럼 소중한 사람을 세 사람씩이나 죽이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이 육신에 젖어 있는 사람의 생각은 그 자체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한 번만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생각에 젖어보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도 이루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도 받아 누리며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그런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나 삶을 종합적으로 기록해 놓은 내용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의 4복음서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모든 것들을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제자들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책들을 읽고 또 묵상해 보면 예수님은 과연 어떠하신 성품을 지니신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매우 긍정적이시고 적극적이신 성품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전혀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말씀이나 행동을 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들은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면 안 됩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행동을 만들어 내는 생각이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한 번은 우리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여 찾아 와 부탁하는 한 불행한 아이의 아버지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도려내고 긍정적인 사고로 바꾸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막9:21-24)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라고 표현한 이 아버지를 예수님은 나무라신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과 함께하시고 그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들의 구주가 되어주신 이상 이 어리석은 아비와 같이 "할 수 있거든"이라는 소극적이고도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적극적인 믿음을 견지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의 선언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소자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말입니다.

뉴욕에 가면 5 Ave와 29가에 위치한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마불개혁교회가 있습니다(1628년 설림).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던 Norman Vincent Peale 목사님이 계셨는데 이 목사님이 미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긍정적인 생각에 관해 외친 분이십니다. 이 분이 결국 "긍정적 사고의 힘"이라는 책을 펴내고 그와 유사한 책을 29권이나 내 놓아 미국과 세계인의 영혼을 깨우쳤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가이드포스트란 원간지를 펴내 4백만 명이 넘는 독자를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평생을 통해 강단에서 긍정의 사고를 외쳤습니다. 그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단순합니다. "당신이 그 어떠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든지간에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당신 자신을 예수님께 맡기면 예수님은 당신의 문제를 함께 짊어지시고 해결해 주실 것이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생각입니까? 만약 이와 같은 절대적인 믿음과 긍정적인 사고로 주님을 등에 업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들은 이 넓디넓은 미국까지 와서도 가슴과 생각은 너무나도 좁아서 늘 불평과 불만과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30년이 넘도록 경험하고 난 이 종이 오죽하면 "자유하라"는 책을 써내기까지 했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와 같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이 오늘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백성들의 근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서울대학교 이부영교수가 한국인들의 의식구조를 광범위하게 연구하여 발표한 것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인들은 잘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해 주겠지 하고 기대한다. 몸을 도사리고 모험을 피한다. 남을 인정하고 칭찬하기 보다는 비판하고 비난하고 돌아서서 욕을 한다." 는 등의 공통점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쑈는 20세기 최고의 유모어 있는 멋쟁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번은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긍정적인 인관과 부정적인 인간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고 말입니다. 그는 식탁에 놓여 있는 포도주 병을 가리키며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야, 아직도 반병이나 남아 있네.' 하는데 부정적인 사람은, '얘, 벌써 다 먹고 반병밖에 남지 않았네.'" 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가르쳐 주십니까? 땅에 묻힌 겨자씨 하나가 수백 배의 결실을 거둔다든가 밀가루 서 말 속에 묻힌 한 줌의 누룩이 그 전체를 부풀게 한다던가, 보잘 것 없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 명이 먹고도 12광주리 가득 거두시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예수님을 생각하며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생각의 발상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주님으로부터 숱하게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사도 베드로는 나중에 그 주님으로부터 배운 바 긍정적인 사고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고 말입니다. 짧은 삶을 염려하고 걱정해서 우리들에게 돌아오는 유익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믿고 적극적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따르면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잘 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부터 기적을 만들어 내는 멋들어진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선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은 우리들의 마음에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지만 아울러 그 선이 선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악이 또한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방해꾼이 없어도 힘드는데 악이라는 방해꾼이 선을 행할 수 없도록 막아선다면 불가능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선험적으로 이와 같은 악을 이기고 선으로 승리하려면 마음속에서부터 생각의 발상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한생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조용히 그리고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 마음에 새겨지고 있는 우리들의 생각을 통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창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우리 하나님은 인생들의 마음의 생각을 늘 관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때를 따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끔찍한 노아의 홍수와 같은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마음의 생각을 선하고 아름답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과 신앙생활의 열매는 이처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 마음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게 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이 들어 올 때면 이처럼 기도하며 영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다스려서 더는 악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종은 오늘 말씀의 제목을 "위대한 생각"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의 생각을 다스릴 줄 아는 정도의 위치에 서게 되면 우리들이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어느 날 Africa에서 제트비행기가 이륙시간이 되어도 이륙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인즉 기체 내에 생쥐 한 마리가 들어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려 4시간이나 걸려서야 겨우 생쥐를 잡아내고 거대한 제트 여객기는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습니다. 쥐가 기관 속에 들어가서 기관고장을 일으키면 아무리 큰 비행기일지라도 추락하기 때문에 작은 한 마리의 생쥐일지라도 시간을 허비해가며 잡아내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생쥐처럼 숨어드는 사탄을 잡아내지 않으면 실패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처럼 우리들의 놀라운 영적인 비상(飛翔)을 가록 막는 그릇되고 악한 생각을 떨쳐내고 푸른 창공을 마음껏 나를 수 있는 긍정과 선한 생각으로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선한 가을의 달 10월의 첫 주일에 우리는 우리들의 생각이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중요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온갖 그릇된 생각들을 털어내고 오직 예수님을 생각하므로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삶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들이 취하여야 할 자세는 우리 타락한 인간의 근본적인 악한 생각을 씻어내는 것입니다. 원죄와 자범죄로 얼룩진 우리들 자신의 모습 그대로는 결코 영적인 주님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그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시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예수님과 같이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사고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악하고도 추한 모든 생각들을 늘 기도와 말씀으로 정리하고 항상 선하고도 아름다운 생각으로 빈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들의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거룩하신 주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시고 영, 육간에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들을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처럼 사람의 근본을 이루는 우리 내면의 생각을 복되게 변화시키고 주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로 영광 돌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풍성한 변화의 역사가 가슴 가득히 충만하게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4년 10월 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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