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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4년 11월 16일 주일낮설교 (성도된 최상의 도리)

2014년 11월 16일 주일낮설교 (성도된 최상의 도리)

성도된 최상의 도리

11. 16, 2014

本文:역대상29:10-14

說敎:崔 仁 根 牧 師

미국에서 인권변호사로 유명세를 떨쳤던 위대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Samuel Leibowitz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자그마치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할 사형수를 78명이나 전기의자에서 구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사무엘에게 감사를 표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감사를 표현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가슴에는 이처럼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자세인 감사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선포해 주셨습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고 말입니다. 이렇듯 감사는 인간의 근본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고귀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처럼 감사를 할 줄 모르는 성도들은 신자의 도리는커녕 사람의 도리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못난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예 큼직한 명령으로 이 감사를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입니다. 감사가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 말씀 앞에서 오늘 우리는 큰 도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감사를 잊어버리고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2014년도 추수감사절을 한 주 앞두고 성도의 진정한 도리가 무엇인지, 함께 공부하면서 은혜 받기를 소망합니다.

성도된 최상의 도리

성군 다윗은 얼핏 보면 엄청난 축복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산 것 같지만 자세히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고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누구나 겪게 되는 배신을 수도 없이 당하였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조차도 반역하여 자신의 신복들의 손에 죽어나가는 끔찍한 일을 겪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시때때로 마음을 열어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토로하고 그것을 시와 글로 남겨 두었습니다.

(시55:1-7)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시22:12-15)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당하였던 고난의 현실이었습니다. 구구절절이 그가 당했던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 감히 상상이 가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감사로 영광을 올려드렸던 것입니다.

(시7: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시9: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시18: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이것은 기본에 불과하고 다윗이 남겨 놓은 시편에는 구구절절이 감사로 넘쳐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위대하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던 사람은 무엇인가 다른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난 10월 시애틀기독교회연합회 연합부흥성회의 강사로 오셨던 서임중목사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평생 견지해 온 삶의 철학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삶이었습니다. 나이 스물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40에 목사로 안수 받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커서 늘 그 은혜에 화답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길을 가려면 무엇보다도 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입술로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누구를 미워하는 말을 하는 것을 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와 같은 삶을 목회하는 평생토록 지속해 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결심과 멋들어진 삶이라 아니할 수 없는 고귀한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천여 명에 불과하던 포항중앙교회를 만 명의 교회로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사람, 불평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반대로 감사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시는데 바로 그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이 그와 같은 혹독한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깊이 감사드렸던 삶의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잠깐 언급해 두었습니다. 함께 살펴보면서 큰 은혜 받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주님의 소유가 됨을 감사드렸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드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인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대상29:10-11)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그는 선포하고 또한 고백합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 또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그는 이렇게도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이 부족한 종을 하나님께서 소유하시고 귀히 여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주님의 소유이면 주님은 바로 우리들의 주인이 되신다는 고백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사탄 마귀의 자식으로 살아가던 우리들을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이란 엄청난 보배를 지불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로 구별하여 사랑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라는 선지자를 선택하시고 창녀와 결혼하게 하시며 그 여인을 극진히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호3: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이 말씀은 호세아가 자신의 아내가 타인의 여자가 되어버린 그와 같은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값을 지불하고 도로 찾아와 아내로 삼았던 상황을 하나님께서 사탄의 자식이 되어버렸던 우리들을 예수님이란 값을 지불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되찾아 오신 사건을 상징적으로 교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편에서는 호세아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듯이 우리들도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요약해 두었습니다.

(엡2:1-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다윗의 고백과 같이 우리들이 사탄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하나님의 소유가 됨을 인하여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는 우리들을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구별해 주신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실직한 사람들에게 직업을 찾아 주는 귀한 일을 하는 Art King이라는 사람은 2,500여명에게 그 귀한 직장을 알선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그를 통하여 좋은 직장을 얻어놓고서도 그 분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사람은 오직 10사람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 인생들은 참으로 감사를 모르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은 성도들이 되었으니 그렇게 하지 말고 온 마음을 다해 다윗과 같이 감사하는 진정한 신자들로 거듭 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생사가 하나님께 달렸음을 감사드렸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대상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이렇게 고백한다면 가상해서 하는 말이려니 하겠지만 당대의 모든 부귀와 권세를 다 누리는 왕이 되어서 이렇게 고백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만드신 분이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분명하게 고백하는 것이므로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분명하게 믿었습니다. 그가 최초로 왕으로 기름을 부음 받을 때부터 그는 그것을 깊이 가슴에 새겼던 것 같습니다. 당시 자신은 아직 너무나도 어렸고 자신의 형들은 일곱씩이나 되었고 다 한결 같이 인물이나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월등하게 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에서 양이나 치고 있는 자신을 불러 친히 그 형들과 아버지가 보고 계시는 가운데서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왕으로 세우시는 분이 하늘의 하나님이셨음을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삼상16:11-13)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지만 오늘 우리들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136편에서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을 스물여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고 그 이유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되 일부분으로 적당하게 하지 말고 완전하게 다 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감사한다"는 히브리어는 "토다"인데 이는 "던져버린다"는 뜻입니다. 이는 진정한 감사는 아낌이 없이 전부를 다 바쳐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Thankful, Grateful이라고 쓰는 것입니다. 전혀 모자람이 없는 최대한의 풍성함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영에서의 접미사 '-Ful'은 바로 그와 같은 뜻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다 무상으로 풍성하고도 넘치도록 주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또한 이렇게 풍성하고도 넘치도록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은 지극히 마땅하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다윗은 하나님께서 감사드리도록 하시기 때문에 감사드렸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에게 복을 주시고 또 풍성케 하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도록 하시기 때문에 감사를 드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상29:13-14)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다윗은 최소한 자신이 그토록 부하고 왕이 되고 백성들이 평안하여 하나님께 정성을 다 드릴 수 있었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은 성도들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사람이 거듭나게 되면 다윗이나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의 존재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나 이처럼 거듭나지 못하게 되면 자신이 잘 난 줄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거듭나지 못한 채 잘난 척 하고 교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하는 자들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감사는 성도된 백성들의 가장 아름다운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들이 잘났다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못났는데 하나님께서 잘나게 해 주셨다면 이는 감사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골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늘 감사를 넘치게 하도록 축복을 넘치게 주시고 계십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님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자녀들도, 오늘날 우리들이 먹고 사는 모든 삶의 터전까지 그 무엇 하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믿음이요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믿음의 결정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7:11-19의 말씀에서 감사는 곧 믿음이라는 사실을 교훈하고 계십니다.

(눅17:11-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문둥병으로부터 나음을 입고 주님께로 다시 돌아와 감사를 드린 이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포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이 사람의 믿음이 감사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감사를 믿음으로 해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자는 결국 믿음이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신자들에게 믿음이 없다면 이는 소금이 맛을 잃은 것과 같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 말년에 성군 다윗이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렸던 것과 같이 오늘 우리들도 믿음에 굳게 서서 삶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감사드리므로 믿음이 있다는 객관적 증거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감사의 달 11월이 깊어가고 다음 주일은 2014년도 감사주일입니다. 과연 우리들에게 감사드릴 반듯한 이유가 있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자세히 공부해 보았습니다. 다윗은 과연 믿음의 예리한 센스를 열어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으로 인해, 모든 주권으로 하나님께서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 주신 축복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선하게 삶을 인도해 주신 은혜에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성도라면 다윗과 같은 감사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는 결국 믿음에서 멀어진, 고침을 입었던 9명의 문둥병자와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진정한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올려드리는 진정한 성도로 거듭나는 은총으로 충만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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