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8일 주일낮설교(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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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Friday, 26 December 201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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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송년 및 직원임명주일
12. 28, 2014
本文:고린도후서1:15-22
說敎:崔 仁 根 牧 師
신약시대의 대 사도였던 바울은 자신의 전 생애 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을 때에 가장 감격하고 감사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는 그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직분을 존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직분을 평생을 다 바쳐 쉼 없이 감당해 나갔습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는 증거와 같이 그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떳떳하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기대하며 한 평생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보다 인생을 멋들어지게 살아간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감격하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 직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먼 훗날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를 만날지라도 후회함이 없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친히 내미실 상급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방도가 과연 무엇인지 함께 말씀으로 돌아가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하고 아니오 함이 없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을 감당해 나가는 방도의 하나로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 선언합니다.
(고후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매우 단순한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이 말씀은 참으로 오늘 우리들이 배우고 본받아야 할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삶을 말하고 있으며 적극적인 삶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고 우리들의 등 뒤에서 우리들을 독려하시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면 그 자체가 곧 불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평생을 이처럼 예 하고 적극적으로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고백하는 다음과 같은 한 말씀만 보아도 이를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것이 바로 예 하고 아니오 함이 없는 멋들어진 삶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생각과 가치를 이렇게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의 가치로 바꾸어 모든 일에 예 하고 나설 때 비로소 하나님의 기적같은 역사가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는 순종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 라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에 그 근거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결국 예만 되고 아니오가 되지 아니함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아멘으로 받아 순종할 수 있는 축복인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렇듯 예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다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오로지 아멘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들에게는 축복이 됨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신앙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으므로 무조건 순종하고 예 하는 결단을 가지면 거기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리이튼 포드라는 미국의 아주 유명한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사건 하나를 "사귀는 전도, 나누는 전도"에서 공개 했습니다. 그가 서부 아프리카 다카공항에서 비행기에 기름을 넣기 위하여 잠시 기다리는 동안 프랑스 출신 선교사가 찾아와 교제를 나누었답니다. 그 선교사가 자신은 모슬렘 지역에서 10년 동안을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하자, 리이튼 포드 목사의 일행 중 한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그동안 얼마나 많은 회심자가 있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님은 "두 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십년 선교활동 중에 2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또 다시 일행 중 한 사람이 불쑥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곳에 있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때 그 프랑스 출신 선교사가 매우 놀란 듯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곳에 왜 있느냐구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그곳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제가 그곳에 있습니다." 리이튼 포드 목사는 공항에서의 그 경험을 자신의 생애 속에 일어난 일 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10년 동안 사역의 열매가 단 2명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곳에 두셨기 때문에 그곳을 떠날 수 없고,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는 그 선교사의 대답에 이 목사는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만 있고 순종만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예 하고 아니오 하지 않는 순종할 줄 아는 그런 멋들어진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일생에 예만 있고 아니오가 없는 이유를 그는 그의 깨달음에서 찾았습니다. 그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그의 다음 말씀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후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직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안수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인 저도 안수를 받았고 장로님도 안수집사님도 다 사도 바울과 같이 기름 부음을 받은 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이처럼 직분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가 하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예하고 순종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들의 존재의 근본이신 하나님께서 원하시니까 우리는 무조건 예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주일 마리아를 통해서 이미 잘 배웠습니다. 정혼한 남편이 있는 여인에게 잉태의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받았지만 마리아가 순종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주님의 소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눅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무엇인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몸도 재산도 시간도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다 주님의 것이라는 이 단순하면서도 영구한 진리를 자신도 모르게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그것으로 욕심을 부리고 생색을 내며 심지어는 모든 것을 다 주신 하나님 앞에서 인색하게 구는 어리석고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외면상으로는 다 똑 같이 생긴 것 같지만 그 머릿속에 지니고 있는 가치나 개념은 천태만상입니다. 그 가치관이 그릇되어버리면 그 삶 또한 그릇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생각과 가치관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지난 주간 대한민국 역사상 한 정당이 해산되고 그 정당에 속해 있던 국회의원들이 모조리 자격을 상실 당하는 초유의 재판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 등의 재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에서 마지막 선고한 재판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통진당의 해산 명령과 그 당의 소속의원 다섯 명이 의원직을 상실하는 판결이었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을 하면서 북한의 사상을 고스란히 전수 받은 빨갱이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석기나 이정희 같은 사람들은 참으로 무서운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으로도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눈에도 보이지 않는 우리 속사람의 가치관이 우리 소유에 관한 바른 개념을 가지지 못하면 결코 예하고 헌신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다 내 것이니까 하나님께 드릴 수도 있고 드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생색을 내고 그것으로 인색하며 자신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사람들의 삶에는 결코 예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소녀가 난치병인 암에 걸려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게 됨을 괴로워했고 뭔가 하나님을 위해 이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고 고민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목사님께 아뢰자 그렇게 병상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어떤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인가기도를 위해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손님이 문안 올 때마다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했고 전도했습니다. 어머니께 늘 물었습니다. "엄마는 교회에 다니느냐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느냐고..." 그때마다 대답은 "Yes"였습니다. 그때마다 너무 기뻤고 확신에 찼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아름다운 기도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 후 그녀가 기거하던 병실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베개 밑에서 수첩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수첩엔 동네 사람들의 이름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중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 이름 옆에는 †표를 그려 놓았는데 모두 56명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대부분 자신의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 텐데 자신의 생명보다 남의 생명을 위한 헌신적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어차피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든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몸과 시간과 생명을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값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귀한 직분까지 주셨으니 최선을 다해 순종하고 헌신하므로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드리는 그런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능력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타의 초종을 불허 할 만큼 놀라운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가 기록한 성경만도 신약의 절반이 넘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그렇게도 놀라운 역사를 이 땅에 남겨 놓을 수 있었을까요?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그가 겸손해서 자신을 낮추고 공을 하나님께 돌리게 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가 한결같이 선포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서도 동일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후1:21-22)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일을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을 감당하도록 도와주시는 분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단순한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고 자꾸만 소극적으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하기야 그 위대한 모세도 그렇게 했으니 오늘 우리들이야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오늘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잘 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키시니까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사시대의 한 사건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두고도 깊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당시 12만명이나 되는 미디안의 군사들은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하나 없는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은 사사 기드온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보여주시려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사사 기드온으로 하여금 미디안을 대항하여 싸울 용사들을 모집하게 합니다. 처음에는 제법 몇 만 명이 모여드는 것 같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하고 돈 벌러 가는 것도 아니고 죽지 않으면 죽여야 하는 전쟁터로 가는 것이기에 그들에게는 큰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쿨하게 그들을 대하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두려워하는 자들이나 가정에 일이 있는 자들이나 장가간 자들이나... 무슨 이유라도 있어서 망설이는 자들은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남은 사람들은 3만 여명에서 30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그 300명을 데리고 12만 명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고 결국은 3백이 12만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신다는 사실을 만 천하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지식이나 경험은 더 더군다나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니 응답하고 예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부르셨으니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님의 권세와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牛生馬死(우생마사)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뜻입니다. 소와 말을 동시에 호수에 던져 넣으면 말이 소보다 두 배가 빨이 헤엄쳐 나옵니다. 그런데 홍수가 나서 강물이 불어난 강에다 소와 말을 던져 넣으면 말은 죽고 소는 살아나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말은 살아나기 위해 흐르는 물살을 거스르며 헤치고 나갑니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물살을 대항하여 헤엄을 칩니다. 그러나 물살이 워낙 세기 때문에 말은 허우적거리다가 결국은 힘이 진하고 물을 마셔 죽습니다. 하지만 소는 결코 물살을 거스르지 않고 그냥 물을 등에 업고 떠내려갑니다. 그러다가 물 가장자리로 떠내려가면서 얕은 곳이 이르면 여유롭게 기어 나옵니다. 자기 힘을 의지 않고 물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기회를 보는 소가 오히려 말보다 더 지혜롭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牛生馬死(우생마사)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인생을 살고 주님의 일을 하려면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기대하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 해가 다 저물어 가는 송년 주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새해에 하나님의 일을 더욱 열심히 하라고 미련한 우리들에게 또 다시 직분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 옛날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시는 직분으로 인해 감사하는 심령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직분을 수행하는데 가장 필요한 예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이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택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하시고 필요한 능력을 더해 주실 줄을 또한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기대하고 기다리면 사도 바울과 같이 하시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놀라운 능력과 권세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비범한 자세로 우리들에게 부여하신 직분을 넉넉히 감당하는 멋들어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면류관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도 넉넉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모쪼록 주님께서 친히 내리시는 귀한 직분을 떨리는 가슴으로 받아 죽도록 충성하고 하늘과 땅의 축복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치 축원 드립니다. 할렐루야!
주후 2014년 12월 28일
송년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