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1일 주일낮설교(하나님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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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11 January 201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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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
선교주일
1. 11, 2015
本文:에베소서3:7-12
說敎:崔 仁 根 牧 師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레인의 작품 중에 '왕자와 거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왕자와 거지가 서로의 신분을 바꾸어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소설 속에서 거지가 된 왕자는 비록 거지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거지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거지인 주제에 말이나 행동이 거지와 같지 않고 걸음걸이 또한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배가 고파도 아무 것이나 주워 먹지 않고 얼굴 그 어디에도 비굴함이 묻어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배가 고프고 얻어맞기도 하고 가진 어려움을 다 겪지만 일반 거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그 거지는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의 실상은 거지가 아니라 왕자이기 때문입니다. 장차 한 나라를 짊어지고 왕이 될 존재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그는 비록 지금은 거지이지만 스스로를 거지와 같이 되도록 자신을 내어버려 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거기에 걸맞도록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은 이처럼 영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귀하게 여기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듯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페르시아 왕국의 2인자로 등극하였던 모르드개였습니다. 아무리 하만이라는 2인자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권을 등에 업고 자신과 자신이 속한 유다 민족을 학대하고 말살하려고 하였어도 그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겨 냈습니다. 비굴하게 거기에 절하고 장단 맞추며 살아남기 위해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동생 에스더 또한 비록 여자의 몸이었지만 "죽으면 죽으리라"는 당찬 결단으로 하나님과 남편 아하수에로에게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전무후무한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또한 무엇인지를 대변해 주는 놀라운 성경적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스스로도 고백하였고 성경에도 기록하여 우리들이 너무나도 잘 아는 바 예수님께 붙잡힌 복음의 사자였습니다. 지난 날에는 그와 같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잡아 죽였던 살인마였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부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이 예수님을 증거해야 하는 하나님의 택정 받은 그릇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일생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한 목숨을 다 내어 놓고 최선을 다해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2015년도 선교주일을 맞아서 이와 같은 우리들의 정체성을 재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깨달아서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비밀
오늘 본문이 담겨 있는 에베소서 3장은 "비밀"이라는 단어가 심심잖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엡3:3-4)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엡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이 "비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비밀이라 함은 "숨겨져 있던 어떤 신비로운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기록된 비밀이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롬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이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이 활동할 그 때에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추어져 있었던 거룩한 뜻이 아직까지 만 백성들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고 보니 사도 바울 자신이 바로 그 비밀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엡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엡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이 말씀들을 눈을 감고 곰곰이 묵상해 보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의 그 중심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감옥 속에서 이처럼 처절하게 인식하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나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이처럼 주님의 복음을 만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다가 결국은 감옥에 깊이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부분, 즉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하고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깊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 인생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정체성을 살려 미련 없이 삶을 살아갔던 사도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또한 그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정체성이 분명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엡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사울이었던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극적인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쓰시기를 원하셔서 그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릇으로 사용하시려고 불렀다고 하셨습니다.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울은 자신을 왜 예수님께서 눈을 멀게하시기 까지 하시면서 자신에게 나타나셨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감옥에 갇혀서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노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다 바쳐 그렇게 살았습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들이 이 한 절을 읽는데는 단 10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도 바울의 일생이었고 또한 우리들의 일생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 마음대로 딴 길로 간다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25장 종말장에 나타나고 있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사명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5달란트를, 또 어떤 사람들에는 2달란트를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1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5달란트와 2달란트와 1달란트는 가치가 아니라 사명 즉 은사의 종류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사명 무슨 은사를 받았던지 간에 우리는 거기에 합당한 열매만 맺히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때가 되어 반드시 하나님께셔 우리들에게 그 사명에 대해 결산하시러 오실 때 무서운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다음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깊이 읽어 보신다면 그 말씀의 의미를 꺠닫게 될 것입니다.
(마25:19-23)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여기에서 5달란트나 2달란트나 하나님은 그가 남긴 열매에 대해 동일하게 칭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두 칭찬은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얼마나 또 무엇을 받았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무엇을 얼마나 열매를 맺혔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5달란트나 2달란트나 동일하고 샘하신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끝으로 마지막 1달란트 받았던 자도 한결 같이 샘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25:28-30)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밝히 보는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1달란트 받았던 자는 모든 것 다 빼앗기고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심판 받은 이유가 "악하고 게을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결단코 악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게을러서도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 두고 있습니다.
(시1:4-6)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 악하지 말고 부지런 하여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을지언정 무서운 심판의 대상이 되지는 말아야 되겠다는 결단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오늘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명이 있다는 것쯤은 이제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죄악 가운데서 부르시고 천국에도 갈수 있도록 구원해 주셨음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영이 어두워져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참으로 영특한 사람이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잡아 죽일 만큼 잔인한 악인이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는 곧 그 사명을 온 가슴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성경에 기록하여 그것이 무엇인가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라는 말씀과 같이 그가 깨달은 그의 사명은 측량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즉각적으로 응답하고 순종하였습니다.
(행9:17-22)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 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는 말씀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사울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고 망설임 없이 즉시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달란트를 받았던 자가 지체하지 않고 즉시 나가서 열매를 맺혔던 사건과 일맥상통하는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마25:16)
다섯 달란트 받은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악하고 게을렀던 1달란트 받았던 종은 이렇게 즉시 가서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온갖 이유와 핑계로 시간을 지체하면서 땅에 묻어 두었다가 모든 것을 다 잃고 마는 무서운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마25:24-25)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 사명을 받은 종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은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하나님을 자랑하고 증거하여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내는 것입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과연 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악하고 게르는 종과 같이 땅을 파고 묻어 둔 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도 바울과 같이 5달란트 받은 자와 2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나가서 열매를 맺히고 있는지? 스스로 자신을 점검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부지런한 청직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종이 고려신학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듣고 본 한 사건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뚜렷이 남아 있어 오늘 여러분들에게 증거해 드리려고 합니다. 고려신학대한 선배 가운데 한 분이 LA로 유학을 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유학생활이란 특졍한 분이 재정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참으로 힘들고 비참합니다. 그분들도 예외 없이 그랬습니다. 부인은 가발 공장에 나가 일을 하고 자신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영어공부와 신학공부를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재간이 좋아 가발공장에서 나와 가발 가게를 차렸는데 그것이 대박이 나 엄청나게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힘들고 어려운 목사가 되어 한국에 가서 사느니 차라리 이 많은 돈으로 자녀들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미국에 주저앉아 여기에서 살자고 졸라댔습니다. 그러자 그 선배 전도사도 못이기는 척 그만 신학을 포기하고 돈 맛에 점점 젖어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름도 원인도 모르는 병에 걸려서 사람 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되던 가발 가게 또한 시들시들 망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불현듯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다시 고려신학대학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거짓말처럼 몸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조그만 한 신학대학에서 크게 화재거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우리 인생들의 얄팍한 꾀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을 부르신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전하라고 하시는 엄청난 뜻이 계심을 순간도 잊지 말고 이 사명 감당하는데 우리의 최선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순종할 수 있을 만큼 선하고 착해야 하며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많은 성도들이 사명도 알고 전도해야 하는 것도 알지만 실제적으로는 잘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주저하게 됩니다. 이는 그만큼 인력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종은 전도해야 하는 전도사이면서도 부산에서 출발하여 서울까지 새마을호 기차 속에서 4시간 반 동안 옆에 앉은 사람의 눈치만 보다가 끝내 전도하지 못한 채 내리고 만 경험이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백합니다. 전도란 그렇게도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말씀은 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라도 도우신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엡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께서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하늘의 정사요 권세인 천군과 천사들을 보내시어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경험을 실제로 여러 번 한 사도입니다.
(행16:9-15)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비록 복음을 전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열어 듣게 하고 변화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무조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은 2015년도 선교주일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오늘날 우리들이 너무나도 무관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정도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불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심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거룩한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친히 맡기신 사명인 복음 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해 가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에 있었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테러사건을 가슴 아프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주간지를 운영하는 신문사에 총을 든 테러리스트들이 들이 닥쳐 다짜고짜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자기 이름이 불리자 손을 들고 대답을 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총을 쏴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경비원을 더불어 12명이 사살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그 신문이 무슬림을 비판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 예수님께 이처럼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거부하는 세력들을 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할 수 없어도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으로 복음을 전할 때 풍성한 열매를 하나님께서 친히 맺히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저 순종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올 해에는 먼 곳에는 선교사님을 도와 복음을 전하고 가까운 곳에는 전도하여 생명을 살리는 그런 복된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치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1월 11일
선교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