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 성령의 열매맺는 교회 --

Tue05142024

Last update12:00:00 AM

Font Size

Profile

Menu Style

Cpanel
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5년 1월 25일 주일낮설교(부르심)

2015년 1월 25일 주일낮설교(부르심)

부르심

1. 25, 2015

本文:창세기3:1-10

說敎:崔 仁 根 牧 師

세계적인 부흥사였던 D. L. Moody목사가 임종을 맞았을 때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며 함께 복음을 전했던 W. I. Thompson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일생 동안 주님을 위해 참으로 많은 일을 해 왔지만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작시한 자네만 못하네, 참으로 난 이토록 유명한 시를 쓸 수 있었던 자네 부럽다네."라고 말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늘 즐겨 부르는 찬송 318장은 그 누구의 마음이라도 움직이는 감동 깊은 찬송입니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도 따뜻한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창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 때가 과연 어떠한 때입니까? 하나님께서 인류 최초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가 외로우므로 여자까지 만드셔서 그에게 주시어 함께 낙원과 같은 에덴동산에서 무상으로 살게 하신, 바로 그런 때가 아닙니까?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그와 같은 놀라운 사랑을 배신하고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미혹하여 넘어지게 하는 사탄 마귀와 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토록 먹지 말라고 엄명하셨던 말씀조차 어기고 그 열매를 따먹고 타락한 바로 그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친히 찾아오시어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린 어리석은 그들을 친히 부르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화목하라시는 말씀을 가슴에 품고 남은 삶을 그렇게 하나님과 화목하며 살기 위해 그 기초적인 말씀을 듣고 배우려고 합니다. 마음 귀를 열고 말씀을 받아서 우리 모두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멋들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부르심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 곁에는 하나님을 등지고 떠나게 하는 무서운 사탄 마귀가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하여 우리는 타락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다는 결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한이 없으신 하나님은 그와 같이 허망한 우리 인생들을 향해 끊임없이 부르시고 찾아오신다는 사실과 그러한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친히 양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사실이 똑똑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된 주일에 오늘은 이와 같은 진리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멋들어진 성도들로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 마귀들

지난 1월 20일 화요일 밤에 시애틀의 위성 도시인 스포캔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사건 하나가 발생하여 모든 이웃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신문에 게재된 그대로 발취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스포켄에서 술에 취해 운전하던 중 기름이 떨어지자 차안에 2살짜리 아기를 둔 채로 걸어서 귀가한 20대 여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스포켄카운티 셰리프국 대변인은 지난 20일 밤 스포켄 밸리에 거주하는 헤일리 헬그슨(22)을 음주운전 및 아이를 무분별하게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로 체포했다. 구치소에 수감된 헬그슨에게는 1만 달러의 보석금이 책정됐다.

마크 그레고리 경관은 집에 도착한 헬그슨은 남편이 아이는 어디 있냐고 묻자 자동차를 어디에 뒀는지 모르겠다며 횡설수설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30여 분간 차를 찾았고 결국 헬그슨의 가족이 안에 아기가 그대로 있는 차를 발견했다.

대변인은 차안에 2시간가량 방치돼 있었던 아기는 출동한 구급대원들의 진단을 받은 후 아이의 아버지에게 인계됐다고 밝혔다.

이것이 바로 먼 남의 나라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에서 발생한 무서운 사건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술입니다. 과연 우리 주변에는 이와 같은 유혹들이 아무런 우리들의 삶과 상관이 없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애틀란타 도라빌 지역에서는 한인이 운영하는 불법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던 여성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으므로 그곳이 불법 도박장이었다는 사실이 경찰에 그대로 노출 되어 크게 이슈화 되었습니다. 바로 열흘 전인 15일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런 유의 이야기를 다 하려면 지면이 부족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유혹의 사건은 이미 태초에 인류의 첫 사람들에게도 예외 없이 닥쳐왔던 회오리였습니다.

(창3:1-5)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처럼 미혹을 하니 넘어지지 않을 인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고 이처럼 확신에 찬 사탄 마귀의 미혹은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와 같은 미혹을 간신히 이겨내고 있는 것이지 우리들 스스로는 도저히 넘어질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증거입니다.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처한 삶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우리들 자신을 인정하고 사탄 마귀로부터 해방 될 수 있도록 크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덧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죄인입니다

이렇게 사탄 마귀와 짝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금하신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버린 이후부터 아담과 하와는 죄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산의 고통과 땀을 흘리며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형벌을 받았으며 결국은 죽어야 하는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3:16-19)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타락한 가운데 잉태된 자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다 원죄를 지닌 채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는 말씀은 인간의 원죄를 잘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죄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죄악 중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공중 권세 잡은 사탄 마귀를 따르며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의 대상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엡2:1-3)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와 같은 우리들의 현실을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이는 성경의 진리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육신의 생명은 가졌으나 영은 죽은 자요 그 육신 또한 때가 되면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현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인식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버렸고 자신의 육신을 따라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우리 인생들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부르시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창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타락한 우리 인생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은 성경 전체에 도배를 하고 있는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이것을 기초로 그의 놀라운 구원의 진리를 완성하였습니다.

(롬8:28-29)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처럼 성전 가득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우리들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세상에 머물고 있는 우리들을 끝이 없는 사랑으로 부르셨기 때문에 이처럼 복된 예배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많은 교인들이 이와 같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모른 채 스스로 신자가 되고 주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분들이 예외로 많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된 신자들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 의에 젖어 자신들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아무 공로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러 자녀로 인을 쳐주시고 예배자로 구별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성도들은 늘 겸손하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 고백한 사도 바울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토록 죄 중에 깊숙이 빠져 더 이상의 소망이 없는 우리 인생들을 왜 불러주셨을까요? 이것은 신앙생활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들이 사람의 종이 되는지? 하나님의 종이 되는지? 판가름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것이 바로 그 정확한 해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기 전에 이미 태초부터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정해 두셨습니다.

(엡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정해 두신 자를 때가 차매 그 가운데서 다시 부르신 것입니다. 부르신 이유는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곧 구원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죄악가운데서 부르신 것은 우리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엡2:13-19)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을 부르시고 천국 백성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놀라운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이 두 말씀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그 가죽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이는 곧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심으로 우리들의 화목제물이 되심을 상징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부르시고 천국의 백성들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우리 인생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희생시키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없이 친히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그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복된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며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죄악의 짐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며 화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면 매우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과연 무엇으로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이처럼 원수 되어 있던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화목할는지? 계속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는지? 그 공은 이제 우리들에게로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까지 내 놓으시고 우리들과 화해를 요청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2015년 한 해가 힘차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해를 맞아 직원 헌신예배를 올려드리고 하나님의 소원이신 죽은 자들을 살려 낼 수 있도록 전도하고 선교하는 선교주일 예배를 올려드렸으며 지난 주말에는 3일 동안 정성을 다해 전교인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오늘부터는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 될는지? 도전 받으며 결단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크신 능력을 덧입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들과 사랑하는 제대로 된 신앙생활과 남은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모쪼록 오늘 거룩한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와 예배로 먼저 영광을 올려드리는 빌립보의 모든 권속들에게 하나님과 화목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는 복된 축복을 누리기시를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치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1월 2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Add comment


Security cod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