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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You are here: Home 말씀과예배 설교 읽기 2015년 2월 1일 주일낮설교(인치심)

2015년 2월 1일 주일낮설교(인치심)

인치심

2. 1, 2015

本文:에베소서1:3-13

說敎:崔 仁 根 牧 師

오늘 본문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하나님께서 죄 많은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우리 한 영혼을 위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눈물 나게 감사한 기사로 가득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이유 또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어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과연 어떠하여야 하겠는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13절 말씀에 기록된 "인치심"이라는 말씀은 더 더욱 우리들을 감동시켜 주며 우리들의 격상된 신분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해 줍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라는 말씀에 등장하는 "인치심"이라는 낱말은 έσφραγίσθητε(에스프라기스데이테)인데 이는 원래 "소유권을 확인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부정과거형으로 쓰여 있어, "한 번 인을 받으면 그 효력이 영원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님으로부터 인치심을 받게 되면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인치심을 받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사탄 마귀의 자식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을 세상에서 불러 성령님께서 친히 인을 치시는 것은 사탄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인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진리를 공부하면서 우리들이 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들을 그렇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역사를 이루어 놓으셨는지? 그 놀라운 진리와 비밀을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모쪼록 듣고 깨달아 감격하고 감사하므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인치심

우리는 과연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누구의 소유가 되어 있는지? 한 번쯤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고 삶의 자긍심을 갖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조상들인 아담과 하와는 이처럼 단순한 정체성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다 받아 누리면서도 사탄 마귀와 짝하고 그의 꾐에 넘어가 영원한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고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배우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시고 부르시는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롬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는 이 두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우리들을 불러 "맏아들"이 되고 하셨다고 하였고, 이사야서에서는 "너는 내 것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변할 수 없는 분명한 신분입니다. 어떻게 우리들이 이와 같은 놀라운 신분으로 격상할 수 있었는지? 그 해답을 오늘 성경 말씀이 또한 분명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들에게 인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님께서 인을 치시기까지 우리들을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 과정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예정해 두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도라 일컬음을 받으며 이처럼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하늘과 땅 만큼이나 놀라운 모습이요, 또한 변화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그들과 달리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이렇게 거룩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이 땅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신자들이 교회에는 나오지만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 그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엡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 말씀은 참으로 오늘 우리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아직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예정해 두셨고 선택해 두셨으며 이 땅에 태어남으로 친히 부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증거 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자녀로 삼아주시되 아무런 조건도 없이 불러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죄나 지으며 자기 잘난 줄 알고 오만과 교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을 불러 하늘의 하나님의 아들딸로 삼으시면서도 그 어떠한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 그 자체인 것입니다.

대한항공에서는 지금까지 기내 서비스를 위해 선택하는 승무원들을 뽑을 때 일정한 키가 넘어야 한다는 기준을 고수해 왔습니다. 왜 기내에서 서비스하는데 키가 필요한 것일까요? 바로 이것이 이 세상 갑이 요구하는 터무니없는 조건인 것입니다. 키가 작은 것은 자신의 노력과 선택사항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가 작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세상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현아 사건으로 잃어버린 민심을 회복하려는 목적인지는 몰라도 2015년 올 해부터는 이런 악한 조항을 삭제하고 키라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한다니 지켜 볼 일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대한항공만이 그렇게 하겠습니까? 모든 곳에서 이처럼 인간적인 한계성을 두고 조건적인 선택을 하고 있음이 현실입니다. 모 대기업의 부장으로 일하던 사람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영어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끝내는 자살하고 만 사건도 있습니다. 늙은 회사의 공신자에게 이제 늦게 영어를 요구하며 못 견디게 하니 참으로 이 세상은 힘드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렇게도 놀라운 하나님의 아들 딸을 선택하시는데도 전혀 조건을 두지 않으시고 우리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태초에 이미 우리들을 찜해 두시고 기다려 주셨다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보혈로 씻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구별해 놓으신 바로 사람을 위해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피를 흘리시며 그의 모든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나면서부터 가진 원죄와 살면서 알고 모르게 짓는 모든 죄는 죽는 날까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우리들의 무거운 올무입니다. 그리고 이 죄 때문에 우리는 모두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만 하는 안타까운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까지 가셔서 피를 쏟으시며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그 무서운 죄가 다 사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피 흘림이 없이는 결코 죄를 씻음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처럼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예배자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은 결코 우리들의 공로가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들의 죄를 피로서 다 씻어 주시고 구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좀 힘들고 어려움과 고통을 당한다 해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하며 위로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차게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이기고 정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상급을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는 한결 같은 말씀들과 같이 말입니다.

믿음의 고장 스코틀랜드 북부에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높은 철로가 있었는데 철로 아래 계곡으로는 급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낱 밤 심한 폭풍으로 계곡의 물이 무섭게 넘쳐흘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양치는 소년이 이곳에 나왔다가 심한 급류에 철교의 중앙 교각이 물에 휩쓸려 내려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곧 승객을 싶은 기차가 이곳을 통과하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기차가 오고 있는 쪽으로 뛰어가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철로 가운데 선 채 옷을 벗어서 미친 듯이 흔들었습니다. 기관사는 소년을 발견하고 빨리 철길에서 비키라고 호각을 불었으나 소년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서서 옷을 흔들어 댔습니다. 기관사는 소년이 비키지 않자 그제서야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승객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기차에서 나와 보고 자기들이 거의 죽을 뻔 했었다는 것을 알고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기관사는 "이리 와서 우리의 생명을 구해준 소년을 보십시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기차 뒤에서 사람들은 갈기갈기 찢긴 소년의 시체를 보았습니다. 기관사가 너무 늦게 브레이크를 밟아서 기차에 치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소년이 우리를 위해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 죽었을 것이요"라고 흐느끼며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고 그는 자기 자신을 우리와 지옥,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 내던졌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혈을 묻혀두신 그 사람을 성령님께서 인을 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들의 존재가 어떠한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아직도 약하고 부족해서 죄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과 구원을 받은 구별된 백성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고귀한 생명이신 피를 묻혀 구원해 놓은 백성들을 위해 성령님께서 친히 인을 치시고 보증을 해 주셨습니다.

(웹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

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를 만 천하에 공포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들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소유를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印(인)"은 그 소유를 뜻하는 가장 완벽한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에 가면 한라산 자락에 수많은 소들을 방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들은 다 주인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 소가 누구의 소유인지 알 수 있을까요? 자세히 가서 보면 각 소의 엉덩이에 소유주의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쇠도장을 만들어 불에 달군 후 소의 엉덩이에다 찍어 두면 영원히 그 소의 소유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의 하나님께서도 우리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친히 인을 치시고 각인을 하셔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만 천하에 밝혀두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하여 구별된 우리 성도들은 세상과 사탄 마귀를 떠나 하늘의 하나님과 화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처럼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예수님께서 피를 쏟으시며 성령님께서 친히 인을 치신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살아가야 할 방도

우리는 오늘 우리들의 신분과 존재가 무엇인지 자세히 공부하였습니다. 이미 우리들이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시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별해 두셨습니다. 그렇게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시고 그 피로 하나님께서 선택해 두신 백성들을 구속하시고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죄 씻음 받은 거룩한 성도들을 성령님께서 친히 인을 치시고 보증하시므로 완벽하게 구별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보잘 것 없는 우리 죄인들을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도 삼위일체께서 친히 역사 하시어 구별하여 구원하여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오늘 본문 말씀이 확실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엡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한결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밑줄 친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듯 찬송은 단순하게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구원에 대한 놀라운 화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 한 소절의 찬송을 부를지라도 마음을 담아 우리들이 구원 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를 실어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403장 찬송을 만들어 낸 로버트 로우리 박사는 우리 주님의 희생과 사랑을 시와 곡으로 만들어 이 세상에 내 놓았던 것입니다.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라고 말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까지 들어갔으나 찬송으로 크게 영광을 올려드리니 하나님께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주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행16:25-26)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남은 삶에 무엇보다도 우선순위로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은 이와 같이 온 힘을 다하는 찬송이라는 사실을 가슴으로 깨닫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는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진 보편적인 존재들이 아닙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시고 예수님께서 보혈을 묻히시고 성령님께서 인을 치신 이 땅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백성답게 품위가 있어야 하겠고 또한 그렇게 소중한 분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사는 길이 바로 찬송으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웃들에게는 소망과 기쁨을 심어주고 하늘의 하나님께는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방식입니다. 우리 이렇게 살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토록 큰 희생을 지불하시고 사랑으로 구별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거룩하신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로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이렇게 변화 받고 이렇게 결단하여서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그 하나님께서 친히 베푸시는 축복으로 날마다의 삶이 축복으로 가득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치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5년 2월 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말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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