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4일 주일낮설교 (그 한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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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04 June 2017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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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 사람이 되라!
6. 4, 2017
本文:마태복음16:13-20
說敎:崔 仁 根 牧師
전 세계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관광지가 바로 하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하와이에는 8개의 섬이 있고 그 중에 보통 여행객들이 갈 수 있는 곳은 6개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북서쪽 끝에 있는 작은 섬 카우아이는 영화촬영지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섬은 한 때 지옥의 섬이라는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곳에 사는 주민 대부분이 범법자들, 알코올중독자, 정신질환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그와 같은 어른들과 함께 섞여 살아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른들의 그와 같은 처참한 모습들을 아무런 가감 없이 그대로 배우고 답습하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런 가운데 뜻이 있는 학자들이 나서서 “카우아이 섬의 종단연구”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1955년에 태어난 어린 아이 833명이 30살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는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과 사람들은 그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장래는 거의 비관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비행청소년들이 되거나 범죄자나 중독자 등으로 전락하여 비참하여졌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심리학자 애미 워너 교수는 833명 중 고아나 범죄자의 자녀 등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201명을 따로 구별하여 그들의 성장과정을 집중적으로 추적 분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1/3에 해당하는 아이들에게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교에 진학하는 등 좋은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보다 더 모범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미 워너 교수는 깜짝 놀라 어떻게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는지 다시 깊은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하나의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이해해 주고 도와주고 끝까지 자기들의 편이 되어 주는 한 사람 이상의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모나 조부모 삼촌, 이모, 친구, 선배, 교사, 목사, 전도사, 선교사 등등 실패해도 좌절해도 더 나은 내일을 무조건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그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며 비관하지 아니하고 밝고 맑게 자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심리학자는 말합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로 거듭나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며 굿굿하게 서 있는 것도 단 한 사람의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단 한 사람이 어떻게 이 세상을 바꾸어 놓았는지 오늘은 그것을 찾아보면서 삶의 새로운 희망을 품고 우리 또한 그렇게 누군가에게 단 한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복된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려고 합니다. 부디 들을 귀를 가지시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한 사람이 되라!
오늘 본문을 보면 그 한 사람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3년 동안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제자들을 훈련하시고 온 세상에 기적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해 오셨던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기 전에 이 세상 사람들이 과연 예수님 자신에 대해 얼마만큼 잘 알고 있는지 살펴보시려고 제자들을 불러 모아 놓으시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말하더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마16:13-14)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엄청 실망하셨습니다. 무려 3년이란 세월 동안 그들을 위해 헌신하시고 희생하셨건만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셨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말입니다.
(마16: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가 똑부러지게 대답하였습니다.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매우 만족해 하셨습니다.
(마16: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사도 베드로가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고백하지 못했던 정확한 신앙고백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얻었고 그로 인하여 이 땅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배경은 바로 이와 같은 그 한 사람 베드로의 정확한 신앙고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서 하나의 소중한 진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바른 신앙고백”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이 땅에는 교회를 세워나가는 거룩한 역사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막연한 인생이 아니라 바로 그 한 사람이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한 사람이 이 땅에 교회를 존재하게 하였습니다
이 땅에 최초로 교회를 세운 최대의 공로자는 바로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석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중한 한 가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교회는 예수님께서 세우시고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예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교회는 사람과 돈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렇게도 단순한 진리가 세워지지 않으므로 이 땅에 교회가 끊임없이 인본주의에 시달리고 세속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명쾌하게 내려 주신 교회에 대한 바른 개념과 정의를 가지고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동행하시는 그런 멋들어진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비록 베드로는 인간적인 허물과 부족함이 많았지만 진정한 신앙고백 하나로 이 땅에 교회를 세우는 초석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적인 어떤 역사가 아니라 속사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바른 신앙과 분명한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최근 한 교회에서 전임 총리와 후임 총리가 나란히 나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임 총리였던 황교안씨와 신임 총리 이낙연씨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들은 나란히 신반포중앙교회에 출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인들은 한 교회에서 두 총리가 나란히 나와 경사 났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교회의 담임인 김지훈목사는 단호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벼슬을 하던 교회에서는 한 사람의 성도일 뿐입니다.” 고 분명한 선을 그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목회자의 이와 같은 가치관은 참으로 성경적이고 바람직한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적인 지위나 재물이나 권세로 역사 되어지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교회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올바른 신앙고백과 말씀으로 무장한 신실한 심령들의 집합체가 되어야 제대로 된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금의 여러 정황들을 보면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권세와 돈과 인맥이 교회의 주축을 이루며 세상 사람들까지도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신앙고백이 결여된 세상의 그 어떤 조건도 교회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도 베드로가 오늘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고, 예수님께서 또한 분명한 교회의 기초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고 계심으로 우리는 오늘 이와 같은 진리로 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교회가 교회답고 예배가 예배다운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그 한 사람이 대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그 얼마나 치밀하시고 계획적인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무려 5백여 년의 세월을 두고 요셉을 준비시키시고 또한 모세를 세우시는 것을 불을 보듯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 요셉에게 일찌감치 꿈을 보여주시고 그를 훈련시켜 애급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모세를 기적 같이 바로의 궁에서 성장케 하시고 광야로 내 보내어 무려 40년 동안을 연단시키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몰랐던 요셉과 모세는 그 얼마나 절망하며 고통을 당하였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우리들이 그 긴 역사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경이로울 만큼 분명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 한 사람 요셉과 모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인물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택정하심을 받아 그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 땅에 이루어 드리는 명실상부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분별하고 인내와 끈기와 믿음으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멋들어진 인물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요셉과 모세를 통하여서 삶의 철학과 믿음의 원칙을 배워야 합니다. 그들에게 뚜렷하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분명하게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물을 똑바로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 주권적 신앙입니다. 비록 형들이 그를 팔아 남의 나라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였지만 요셉은 결코 그것을 형들의 잘못으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일찌감치 자신이 그렇게 타국에서 고생하고 감옥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요 뜻이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만약 범상한 오늘 우리들처럼 인간적인 원한을 안고 살았다면 그는 결국 원수 갚는 일에 소중한 사명을 묻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국적인 자세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주권을 발견하였으므로 그는 사사롭게 원수 갚는 등의 초라한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모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40년 동안이나 애굽의 왕궁에서 자라난 왕자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40년은 왕궁과 정반대의 삶인 광야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는 경거망덕하거나 좌절하고 낙심한 흔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적인 화려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거룩한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고 과감하게 포기하고, 버렸던 인물이었습니다.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역시 모세는 그릇이 큰 인물이었고 삶의 목적이 분명한 신앙인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과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 주변의 모습을 비교해 보신다면 과연 우리들이 어떻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는지 그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더 커져야 하겠고 더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작은 가슴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엄청난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적인 그 무엇이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으면 그것을 빌미로 교회의 주인의식을 가지는 졸장부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세상적인 그 무엇이 모자라면 스스로 의기소침해서 매사가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전락해 항상 비판적이고 비협조적인 그런 작은 자가 되고 말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회의 기능을 회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요셉이나 모세와 같이 멋들어진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미래 지향적인 역사를 이 땅에 만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통해 거대한 민족을 애굽에서 만들어 놓으셨던 하나님께서 마침내 모세를 통해 그 민족을 출애굽 시키셨던 대 역사를 바라보면 요셉과 모세가 얼마나 위대하게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잘 이루어 나갔던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교회와 후손들을 통하여서 그 한 사람이 되어 지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부디 작은 인본주의를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거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쫒아 작은 몸 하나 과감하게 던져 희생할 줄 아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사는 진정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 한 사람이 민족을 구원하였습니다
그 한 사람이 성경에는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몰살 직전에 유다 민족을 구원해 낸 모르두개와 에스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개인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심지어는 하나 뿐인 생명까지도 과감하게 포기하고 오로지 민족의 해방과 구원만을 위해 일생을 걸었던 위대한 인물들이었습니다. 모르두개는 에스더를 왕궁에 보내 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 왕궁의 문 앞에 서서 동태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모르두개 자신의 개인적인 삶은 없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사로운 개인의 영달은 이미 포기한지 오래였습니다. 오로지 왕궁에 들어간 에스더와 그녀가 섬기는 왕 아하수에로의 안녕을 위해 그리고 소수민족으로 대국 속에 묻혀 사는 유다 민족의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그곳에서 왕을 모살하려는 악당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것을 에스더를 통해 왕에게 전달함으로 왕의 생명을 구해내는 기적 같은 역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왕궁에서는 그 어떤 보상도, 칭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두개는 그것을 기대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사람됨과 큰 그릇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공도 인정받기를 원하는 오늘 우리들과는 근본이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왕이 스스로 그것을 궁중 일기를 통해서 발견하고 포상하며 이로 인하여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던 유다민족이 구원 받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 한 사람의 에스더는 더욱 더 고상하고 멋집니다. 그녀는 소중한 한 목숨까지도 내어 놓고 왕 앞에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자기 희생 없는 타인의 구원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렇듯 자기 희생을 통해 이웃을 구원하는 특별한 단체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인들은 하나 같이 타인의 희생을 통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그릇된 단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하나님은 그 한 사람 모르두개와 에스더 같은 신실된 인물들이 우리교회에서 나오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그 한 사람이 되어 이웃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놀라운 역사가 가득하시기를 충심으로 소원합니다.
지난 5월 4일은 National Day of Prayer로 미국의 기도의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1952년 해리 S. 투르만 대통령이 미국을 위해 각 가정과 개인을 위해 기도하는 날로 선포하고 오늘날까지 미국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전국적인 위대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오바마 집권 8년 동안 이 날은 거의 사장 되다시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전국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이 날을 기도의 날로 재선포 하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자유하고 정부의 그 어떤 공권력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도록 “Religious Liberty”, 신앙과 언론의 자유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동안 목회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설교하고도 감옥으로 가야 하는 엄청난 불 유익을 감수해야만 했었습니다. 동성결혼을 죄악이라 했다가 감옥가고 동성결혼에 꽃을 팔지 않았다가 재산을 몰수당하는 엄청난 파란이 소위 기독교 국가라는 이 미국에서 자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바마가 만든 Johnson Amendment(존슨 개정)이라는 법 때문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이 날 행정명령과 함께 이 법을 패기 처분하였습니다. 그러자 사탄교, 동성애, 낙태, 이슬람, 여성인권운동연맹 등이 거세게 저항하며 민주당 의원들을 부추기며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시대는 진정한 신앙을 견지하고 유지하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모르두개와 에스더 같은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를 우리를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2017년도 현충의 달 6월을 맞아 희생과 헌신을 다시 한 번 더 고취시키고 진정한 신앙인들이라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는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그 해답을 찾아보았습니다. 자기 하나만 편안하고 손해 보지 않으면 된다는 편협된 생각을 던져버리고 인간적으로는 비록 완전하지 못하지만 베드로와 같은 변할 수 없는 신앙고백을 통해 이 땅에 교회를 반듯하게 세워가야 하겠습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의 안녕을 위해 요셉과 모세처럼 거국적인 마인드와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인내와 끈기를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잠시 잠깐 살다가 갈 우리들의 인생인데 너무 그렇게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와 인본주의로 육신만을 위한 삶은 과감하게 청산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모르두개와 에스더와 같은 결단력 있는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제 부모 하나도 섬기지 못하고 제 자식까지도 버리는 무서운 시대임을 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은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유익과 도움을 주려는 그 한 사람이 있는 한 우리들의 내일에 희망이 있고 꿈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 마당만 밟고 다니는 어리석은 종교인이 되지 않도록 예수님을 닮아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시기를 소망합니다. 귀한 날 6월 첫 주일에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와 희생을 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원대한 소망과 은총이 풍성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주후 2017년 6월 4일
주일 낮 예배 설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