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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선택 (2024년 6월 02일 주일낮설교)

목숨을 건 선택

6. 2, 2024

:여호수아2:1-14

說敎:崔仁根 牧師

 

모세의 대를 이어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여호수아가 가장 큰 관문인 여리고성을 점령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내어 탐지하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의 땅에 들어가 간첩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역시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노출이 되었고 급기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여리고 왕은 군사를 보내어 잡아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결국 군사들은 그들이 유숙하고 있던 기생 라합의 집으로 들이닥쳤고 라합은 그들을 옥상에 있는 삼대 속에 숨겨 두고 군사들을 따돌려 목숨을 건져주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선택이라는 놀라운 단어가 나타나게 됩니다. 라합은 임금의 명령을 따라 정탐꾼을 고발할 수도 있었고 그들을 숨겨주고 목숨을 살려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생 라합은 왕의 명령보다는 일면식도 없는 정탐꾼을 선택하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이 위협을 받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선택하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비밀을 찾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교훈을 삼고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인생과 신앙생활에는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선택을 잘못하여 소중한 인생을 슬픔과 고통으로 보내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일생을 축복으로 살아가는 행운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라합은 비록 기생이었지만 순간의 복된 선택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온 가족들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희생과 현충의 달 6월 첫 주일에 오늘은 이와 같은 선택의 문제에 관한 진리를 배우고 우리들도 라합과 같이 우리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들이 속해 있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내는 그런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은 결국 선택입니다

(2:2-6)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기생 라합은 한 순간에 무서운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집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여호수아가 보낸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런 동시에 왕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정탐들을 잡으려는 군사들 또한 들이닥쳤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내어 놓고 왕의 명령을 따르던지, 아니면 그 군사들을 따돌리고 정탐꾼들을 살리던지 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왕은 백성들의 생사를 결단하는 절대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는 백성이 그런 왕의 명령을 따돌리기란 목숨을 걸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왕의 명령보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정탐꾼들을 선택하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일상이 무료할 만큼 반복되고 있지만 어느 한 순간에 기생 라합과 같이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이와 같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육신과 영혼, 선과 악, 하나님과 돈, 나의 유익과 타인의 유익 등 숱하게도 많은 순간에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선택은 선택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선택한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아간이라는 이스라엘의 백성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오늘 주인공인 기생 라합이 살고 있는 여리고를 점령하러 들어간 군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점령하러 가기 전에 엄중한 명령 하나를 내렸습니다.

(6:18-19)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간은 여리고를 점령한 후 그곳에 있는 금덩어리를 발견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고 절대로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였으나 아 간은 주변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고로 아무도 몰래 그것을 취하고 깊이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사실을 사람은 아무도 몰랐는데 하늘의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7:10-1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아간과 그에게 속한 모든 가족들과 심지어 짐승까지도 다 몰살당하는 엄청난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명령과 황금의 사이에서 황금을 선택하였다가 망한 인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말씀 하나를 남겨두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지혜로운 선택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신앙생활은 결국 선택입니다. 우리들이 복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저주를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1:26-28)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생 라합과 같이 오늘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하신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바른 선택의 기준

(2:8-11)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기생 라합은 왕의 명령과 하나님의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습니다. 당장 자신에게 생명이라도 빼앗을 수 있는 절대 권세를 가진 왕이 명령을 하였습니다. “네 집에 들어가 있는 간첩들을 당장 끌어내라.”고 말입니다. 이 순간을 잘못하였다가는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왕은 라합의 집에 이스라엘의 간첩이 들어 와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리고를 점령하실 여호와를 생각하면 당장의 목숨보다 더 큰 미래와 온 가족들의 목숨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결론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기생 라합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왕의 명령을 따르고 당장의 목숨을 얻는 것과 위험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종들을 거두고 보호하는 것이 그랬습니다. 왕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군인 간첩들을 숨겨주는 것은 엄청난 모험을 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러자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기생 라합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직접 고백하였던 다음의 내용이었습니다.

(2:8-11)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는 말씀은 오늘 우리들보다 전혀 못지않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요 확신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과 역사를 똑바로 알고 있었기에 그는 왕의 추상같은 명령보다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생 라합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기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처럼 하나님에 관한 절대적인 지식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기생 라합과 같이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선택의 결과

(6:22-25)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하나님은 여리고의 모든 것들을 다 죽이고 불사르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하나님을 등지고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6:20-21)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기생 라합과 그 기생에게 붙은 모든 가족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목숨을 건 선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른 선택에 따른 보상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만약 그 때 기생 라합이 왕의 명령을 따라 정탐꾼들을 내어 주었더라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이 점령되는 순간 그들과 똑 같이 다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로 어기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선택이 삶이고 선택이 신앙인 오늘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라합과 같이 그 어떤 위협과 두려움이 눈앞에 버티고 있을지라도 바른 선택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멋진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욥을 한 번 묵상에 보신다면 이와 같은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욥은 이유도 알 수 없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상황에서 10남매와 모든 재산과 건강까지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세상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이유로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1:20-22)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욥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무슨 일을 하시든지 옳으신 분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들도 무슨 일을 만나든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믿고 그 어떤 경우에도 이와 같은 하나님을 선택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욥과 같이, 또 라합과 같이 거기에 상응하는 보상으로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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