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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사명 (2024년 6월 16일 주일낮설교)

목숨을 건 사명

아버지주일

6. 9, 2024

:사도행전20:17-24

說敎:崔仁根 牧師

 

마태복음 25장은 종말장으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지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소중한 달란트를 맡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을 받았던, 둘을 받았던, 혹 하나를 받았던 그 수는 의미가 없습니다. 받은 것에서 갑절로 남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성도들이 거기에 합당한 열매를 맺혀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와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는 각각 열 달란트와 네 달란트를 가지고 와서 주인에게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아주 만족해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칭찬해 주셨습니다.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는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여 땅을 파고 묻어두었다가 그것을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주인은 매우 노하였습니다. 그리고 심판하였습니다.

(25:26-30)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부름 받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使命(사명=맡겨진 임무)이라고 합니다.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이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고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은 목숨까지라도 내어 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은 올 해의 표어와 같이 하늘 상을 기대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오늘 주시는 귀한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부름 받은 성도들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원래 잔인하고도 악한 살인마였습니다. 초대교회 최초의 집사였던 스데반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말씀이 귀에 거슬렸던 유대인들과 사울은 그와 같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 땅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사울은 다메섹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의 이유가 놀라왔습니다.

(9:11-15)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예수님은 이와 같은 잔악한 살인마를 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부르신 목적이 분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전하여야 할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에는 과거의 사연이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비록 사도 바울이 스데반을 잡아 죽이고 또 다른 성도들을 죽이려는 악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예수님은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모세에 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이스라엘 민족을 돕고 구원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애국자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민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가차 없이 쳐 죽였습니다. 그것이 탄로가 나자 바로 왕은 모세를 잡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로 인해 애굽의 왕궁을 탈출하여 정처 없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어언 40년이 지났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그와 같은 모세를 친히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모세를 왜 부르셨는지 소상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3:1-110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말씀과 같이 40년 동안이나 초야에 묻혀서 바로의 칼날을 피하여 왔던 모세를 친히 부르시고 그 모세에게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시 바로에게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고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부르신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모세나 한결같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죽인 자 보다 더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 한 마디도 거기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와 같은 그들에게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성전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며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원리로 오늘 우리들에게도 모세와 바울과 같이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다면 사울 왕과 같이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는 권능을 주십니다

(19:11-12)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일은 결코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악하고도 악한 세상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상대해야 하는 대상은 당대 최고의 나라였던 애굽이었고 당대 최고의 권세를 가진 바로 왕이었습니다. 그 바로 왕은 애굽인을 쳐 죽인 모세를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절대 권력자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당대 최고의 선민으로 스스로 잘 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을 노골적으로 잡아 죽이려고 큰 그룹을 만들어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었습니다.

(23:12-13)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 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예 목숨도 내어 놓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상황을 그 누구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이처럼 사명을 감당하는 종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놀라운 권능을 주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 설 때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쥐어 주신 능력의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그 지팡이는 던지면 뱀도 될 수 있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를 유유히 흐르는 홍해를 향하여 내 밀었을 때는 그 홍해도 갈라지는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온갖 권능을 다 행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찬송만 불러도 옥문이 다 열리는 능력과 손수건만 환자의 몸에 놓아도 병이 떠나가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독사에게 물렸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는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잡아가던 유대인들의 칼날이 무서워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베드로도 놀라운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러 가다가 만난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외쳤더니 순식간에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기적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능력이었습니다. 이것을 주신 이유는 완악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의 일을 하는 종들이 엄청난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 생명의 주님이 전파되고 안전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아무 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중한 사명을 힘을 당해 감당해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명을 감당한 성도들에게는 하늘 상급이 주어집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의 현실이요 한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올해의 표어로 하늘 상을 바라보라!”고 정하고 하늘 상급을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하늘 상급은 과연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기쁨으로 잘 감당하는 신실한 종들이 받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위에 인용한 성경 구절에서 밝히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요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성경말씀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경건하고도 지혜롭게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지 결단하여야 하겠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사도 바울과 같이 목숨이라도 내어 놓고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난주일 받은 말씀의 주인공이었던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오직 주님만을 쫓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신 의의면류관을 받아 누리는 천국의 시민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모쪼록 하나님의 이와 같은 소중한 사명을 가슴으로 받아서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이 되시기를 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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