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살린 순종 (2024년 6월 23일 주일낮설교)
- Details
- Category: 설교 읽기
- Published on Sunday, 23 June 2024 00:00
- Written by 최인근 목사님
- Hits: 68
목숨을 살린 순종
6. 23, 2024
本文:창세기6:1-8
說敎:崔仁根 牧師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신 것은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명을 잊어버린 채 오로지 자기 자신들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씀을 남겨두었습니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한 가지는 바로 순종입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마음을 망각하고 오로지 육신에 젖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들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고 급기야 그런 인간들을 심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창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참으로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슬픈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조금이라도 피조물인 인간들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더라면 이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바로 이 때와 같습니다. 인간들은 돈과 명예와 출세로 오로지 육신적인 만족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 모래 속의 보석과 같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노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노아를 통하여서 새로운 인류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와 같은 말씀으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되는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모쪼록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육신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
(창6:1-3)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목적을 두고 선택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로 살아가는 것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각조차도 육신적으로 하는 자들은 사망이라는 무서운 심판으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롬8:5-6)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적인 가치로 되돌아가 육신적으로만 살아가는 것을 보시고 매우 실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창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육신적으로 살아가던 어리석은 인간들은 홍수로 멸망하는 엄청난 심판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배경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육신적인 삶으로 하나님을 배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이와 같은 극단적인 심판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 하나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말씀입니다.
(창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생명과 사망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사람이 되어 영적으로 말하고 영적으로 생각하고 영적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바로 그곳에만 참 생명과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창6:8-10)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 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물로 온 땅을 심판하실 때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노아를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도 육신을 떠나 영적으로 살아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8절이 시작되는 단어 “But=그러나”가 바로 이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온 지면의 사람들이 다 제 마음대로 육신을 따라 살아가지만 노아만큼은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영적으로 살아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밤이 깊고 캄캄 할수록 작은 반딧불도 밝게 보이듯이 세상이 워낙에 타락하였기에 상대적으로 노아는 거룩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와 같은 노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창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 하였으며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의 수가 많고 모두가 넓은 길로 달려가도 그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길이라면 함께 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노아와 같이 바른 길로 가는 사람이 오직 자신 한 사람뿐일지라도 그 길이 옳은 길이라면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그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일찌감치 말씀해 주셨던 진리입니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고 말입니다. 오늘 날 우리들은 과연 어떤 길을 걷고 어떤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과연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입니까? 그럭저럭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이지만 하늘의 하나님은 노아를 보시듯, 그리고 그 당시 육신적인 사람들을 판단하시듯 우리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시고 계신다는 시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서 상을 주실지, 벌을 주실 지를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보신다면 노아가 그 얼마나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았겠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육신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노아의 사방에 둘러싸여 있는데 고고하게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노아를 그 얼마나 욕하고 비난하고 무시하였겠는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닷가도 아니고 산중에서 배를 짓고 있을 때는 얼마나 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비난하였을는지 뻔 하게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배를 산중에다 지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미련할 만큼 꾸준하게 산중에서 배를 지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평생에 단 한 번도 경험 해보지 못했던 배를, 그것도 조그마한 돛단배가 아니라 지구의 모든 암 수 짐승들이 다 들어가고 자기들의 식구들도 다 들어가서 살아갈 수 있는 여유 공간을 가진 엄청난 배를 산중에서 짓고 있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보도 그런 바보가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런 신실한 종이 없었던 것입니다.
(창6:14-16)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규빗(45.6cm)을 현대 길이로 환산하면 길이가 300규빗은 135m이고 높이는 50규빗이니 22.5m이고 높이는 30규빗이니 13.5m로 실로 엄청난 사이즈의 배였습니다. 이것을 노아가 산 속에서 세 아들을 데리고 지어갔으니 세상 사람들이 조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이와 같은 외부적인 환경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묵묵히 방주를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배우고 지켜야 할 보배로운 자세가 바로 이와 같은 노아의 모습니다. 그렇게 순종한 결과가 자신과 온 가족들의 생영을 살리는 비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살린 순종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렇듯 노아는 상식과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현실적인 여건 등 그 어느 것 하나라도 타당성이 없는 방주 짓는 일이었지만 그는 바보처럼 묵묵히 산 속에서 방주를 지어 갔습니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입니다. 사실 노아는 단 한 번도 이처럼 방대한 배를 본적도 없었고 물론 만들어 본적도 또한 없었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단 한 번도 온 세상이 다 물에 잠기도록 내리는 비를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여 배를 만들어 갔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노아에게 배를 지을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공급해 주셨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들의 경험과 지식과 현실을 꺼내들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만 순종하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아가 어떻게 순종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을 정확하게 남겨두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앞서 인용해 드렸던 창세기 6:22와 창세기 7:5의 말씀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예고해 주셨던 것과 같이 노아의 방주가 완성되고 노아의 8식구와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짐승들이 방주에 다 들어간 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고 물이 차오르자 산 속에 머물고 있던 배도 떠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려 40일 동안 비는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습니다. 과연 땅 위에 존재하던 모든 인간과 동식물들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다 죽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육신으로 변해버린 죄악된 이 세상을 모조리 쓸어버리시고 노아의 8식구와 방주에 탄 짐승들을 통하여서 이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노아의 8식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 노아의 지극한 순종만이 소중한 생명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노아의 아내가 어떠했는지, 노아의 아들들이 어떠했는지, 노아의 며느리들이 어떠했는지 기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노아로 인해 온 가족들이 덤으로 구원을 받았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랑하는 자녀들과 가족들을 살리는 진정한 길이 무엇인지 바로 여기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가족들을 살려내는 길은 돈이 아닙니다. 자녀들을 이류대학에 보내고 성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이와 같은 소중한 진리를 깨닫고 남은 삶을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지 스스로 해답을 찾아 노아와 같이 놀라운 순종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노아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부디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빌립보의 권속들과 함께 하시기를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