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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살린 믿음 (2024년 6월 30일 주일낮설교)

목숨을 살린 믿음

6. 30, 2024

:요한복음11:17-27

說敎:崔仁牧師

 

오늘 우리들에게 과연 믿음이 있을까요?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관념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이 질문을 드리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도 못하고 구원도 받을 수 없다면 오늘 우리들의 모든 신앙행위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늘 제자들의 믿음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들의 믿음이 말세, 즉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에는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예언하셨습니다.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저 막연하게 나에게도 믿음은 있겠지 라는 기대만 하지 말고 운전을 할 때 수시로 개스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점검하듯이 우리들의 영혼 속에 과연 믿음이 얼마나 있는지 점검하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이 우리들의 유사시에 그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소중한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말입니다. 함께 복된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인생여정에는 뜻하지 않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11:1-3)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는 비록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예수님을 믿으며 소박하게 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예수님을 모시고 식사라도 대접하고 또 은혜 베풀어 주신 주님을 위해 값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의 발에 부어드리는 귀한 헌신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평범하면서도 소박한 행복이 계속되었으면 좋으련만 우리들도 늘 경험하는 바와 같이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하늘 같이 의지하던 오라비 나사로가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병은 앓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 병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엄청난 불행으로 다가왔습니다.

(11:11-14)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평소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불행이 이렇듯 현실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의 슬픔과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오늘 우리들도 능히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11:32-35)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그곳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누구라서 이처럼 울며 고통의 늪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렇듯 눈물과 고통의 쓴잔을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기는 아예 인생을 다음과 같은 짧은 한 마디로 요약해 두었습니다.

(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인생을 이렇게도 짧고 굵게 요약해 둔 말씀도 없습니다. 불티가 하늘을 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은 정처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게는 우리들의 삶을 붙잡아 주실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의 이와 같은 현실을 잘 아시고 불쌍한 우리들을 친히 부르시는 것입니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이와 같은 예수님을 가슴에 보시고 그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고통의 때에는 예수님을 모셔야합니다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마르다와 마리아는 나사로가 병들자 즉시 사람을 예수님께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예수님과 친근하였고 또한 그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본받고 배워야 할 소중한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고통의 때를 주시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멀리 떠나 있는 우리들을 예수님 곁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의 문제는 이 세상에서 오직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것임을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11장의 나사로 사건도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이적과 기적을 37번이나 행하셨는데 그 첫 번째 사건이 바로 요한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뻐야 할 혼인잔치에 문제가 생겨 수치스럽고 부끄러움을 당하여야 하는 절박한 순간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 문제를 해결하시고 영광스럽게 혼인잔치가 잘 끝나도록 하시는 역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와 같은 기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잔치 집에서 예수님을 그 곳에 친히 모셨기 때문이었습니다.

(2:1-2)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여정에도 문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평소에 예수님만 모시고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친히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고 말입니다. 행여 오늘 우리들은 너무나도 바빠서, 그리고 사는 것에 너무나도 지쳐서 주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문 앞에 오셔서 문을 두드리시는지 알지조차 못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평소에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을 모시고 식사대접도 해드리고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아낌없이 드리기도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언제 우리들에게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나의 혼인집과 같이, 오라비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이 고통의 때에 예수님만 모시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기적을 보게 됩니다

(11:40-4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렇게도 낯선 미국 땅에서 참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돈을 날이면 날마다 엄청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사용하는 것 외에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약하고 아끼며 돈을 모으는 것은 알 수 없는 때에 필요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꼭 이와 같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믿음은 그렇게 많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믿는 성도들이나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나 거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나 별로 돈이 없는 사람이 일상에서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이나 고통의 때에 돈과 믿음은 엄청난 역사를 만들어 냅니다. 죽은 나사로가 순식간에 살아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 우리들에게 위기의 순간이 찾아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무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라비가 죽어 슬픔과 눈물이 앞을 가리우는 그 절박한 순간에도 예수님은 냉정하리 만큼 마르다에게 이와 같은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11:25-2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는 곧 믿음이 일상 생활화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돈을 먼저 내지 않으면 수술해 주지 않습니다. 바로 이 때 모아 둔 돈이 없으면 수술을 받지 못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크게 필요하지 않지만 틈틈이 돈을 모아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도 언제 위기의 순간을 맞을지 알 수 없으므로 평소에 믿음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믿음은 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신앙생활의 본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나사로가 죽어 이미 썩은 냄새가 나는 최악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믿음에 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렇게 거듭거듭 믿음을 강조하시고 그 믿음을 확신시키신 다음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들을 괴롭히는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예수님을 모시고 믿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사건을 친히 기록하시고 오늘 우리들을 훈련하시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할 때 우리 속에서 믿음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힘든 이민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어렵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하는 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예수님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권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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