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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을 만난 사람들 (2024년 7월 14일 주일낮설교)

풍랑을 만난 사람들

7. 14, 2024

:사도행전27:9-20

說敎:崔仁牧師

 

1912410일 영국 리버폴을 출발하여 뉴욕으로 달리던 타이타닉 호는 영국의 자랑이요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배를 만들고 첫 출항을 하던 타이타닉 호는 그 어떤 경우에도 침몰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2,2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영국을 떠났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 배는 초호와 여객선이었습니다. 얼마나 그 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지 그 배의 선장과 직원들은 지나가는 배들이 바다에 엄청난 빙산이 떠다니고 있다는 무전조차도 조롱하며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배는 결국 그 빙산에 충돌하게 되었고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오만과 방심으로 애꿎은 승객들만 소중한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무려 1,514명이나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현대사회의 배와 같이 거대한 기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사이즈를 자랑하던 큰 배가 파손되는 풍랑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 무려 276명이나 탈 수 있는 배였다면 실로 대단한 배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배 역시도 인간들의 욕심과 오만이 불러 온 인재였습니다. 다행히도 사도 바울로 인하여 무려 열나흘 동안이나 시달렸던 그 위험한 풍랑에서도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고통과 재산상의 손실은 방지할 수 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와 같은 큰 사건과 사고를 통하여서 배워야 할 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수련의 달 두 번째 주일인 오늘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큰 사건을 통하여서 소중한 교훈을 배워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 소중한 것을 유지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어떠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여야 하겠는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그 참된 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풍성한 은혜와 복을 체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인 욕심이 풍랑을 만나게 합니다

(27:9-11)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사도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가이사에게로 호송 되는 먼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여정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용하려고 했던 그 배는 매우 출항기가 어려운 시기를 맞았습니다. 요즘말로 표현하자면 허리케인이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계절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예견을 자신을 호송하는 책임자 백부장 율리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백부장은 비록 사도 바울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능력을 가진 영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호송하는 죄수로만 여기고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 믿고 출항을 결행하였던 것입니다.

27: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무리하게 출항하게 된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곳은 겨울을 지나기에 불편한 곳이고 좀 무리해서라도 뵈닉스에 가게 되면 겨울을 지나기에 더 좋은 환경이라 그곳으로 어서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이 탄 거대한 배는 이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 출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려면 참으로 여러 계층 사람들의 여러 의견이 나오게 됩니다. 과연 그와 같은 경우에 누구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서 배가 위험부담을 안고 출발하게 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선장과 선주의 주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주가 누구입니까? 배의 주인입니다. 선장은 누구입니까? 그 배를 운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돈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위험이 있을 거라는 바울의 말보다는 금방 출항하여 돈을 버는 길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많은 사람들도 그곳에 머무는 것보다는 뵈닉스에 가서 그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육신적인 현실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소중한 진리가 있습니다. 인생의 값진 시간들을 육신적인 목적을 위해 보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을 꼭 가슴에 품고 육신적인 삶을 줄이고 영적으로 하늘 상을 바라보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인생에서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27:18-19)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

일시적인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사도 바울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듣고 곧장 출발하였던 것이 너무나도 좋아보였습니다.

(27: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상상도 못한 거센 풍랑이 몰아닥친 것은 출발하고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였습니다.

(27:14)

얼마 못 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라는 말씀처럼 광풍이 몰아닥쳤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예측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연계의 변화였던 것입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몰아쳐 배가 기약 없이 흔들리고 부서지니 그들은 결국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물건들과 배를 움직이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배의 기구들을 모조리 바다에다 버렸습니다. 그래야만 배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져서 배 안에 있는 소중한 생명들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진짜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사람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설명해 두었습니다.

(27:22-26)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라서 이처럼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들의 삶의 현실에는 사람의 생명보다 명예나 권세나 돈을 더 귀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이 세상의 사람들은 그러한 가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생명과 건강은 저절로 누리는 축복인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이 종도 우리 교회를 개척하고 4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쉼이나 휴가를 가져보지 못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우리들이 이처럼 어리석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 못하는 기계도 쉬어주고 툰업해 주고 기름 을 칠해 주어야 오래 쓰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그저 관념적으로만 생명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하지 말고 그 생명이 소중해 질 수 있도록 영육 간에 더욱 잘 관리하고 보살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사도 바울과 같이 소중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더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중한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27:24-25)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76명이나 타고 있는 거대한 배도 유라굴로라는 대풍 앞에서는 한 갓 조각배처럼 흔들렸고 급기야는 거의 다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극심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언제 배가 뒤집어져 무서운 바다 속으로 빠져들는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이 그들 앞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비록 배와 재산은 잃을지라도 소중한 생명만큼은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천명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 일행들이 천신만고 끝에 멜리데라고 하는 작은 섬에 다달아 276명 전원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던 그들을 위해 사도 바울은 친히 장작불을 피우고 그들을 보호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뿔사 바울이 독사에게 물리고 말았습니다. 나무를 집어 불에 넣는 과정에서 그 속에 머물고 있던 뱀이 바울의 손을 물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시 온 몸에 독이 퍼져 죽을 줄 알았던 사도 바울에게 아무런 이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28:3-5)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독사에게 물리고 살아남은 사람이 아직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을 신으로 여겼습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살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8:3-6)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섬에 살고 있었던 토속민들이 평생을 두고 경험한 바는 사람이 독사에게 물리면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독사에게 물리자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터득한 상식이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바울을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냥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찌감치 이와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해 두셨습니다.

(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놀라운 기적과 역사는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모든 일들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의 모든 삶을 통치하시는 이와 같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스스로 잘 살아가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또 죽임에 이른 불쌍한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를 곳곳에서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우리들의 생명 줄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 그 어떤 풍랑이 우리들을 향하여 몰아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무서운 곳에서 건져내주시고 독사에게 물려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환경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환경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신앙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의지하는 우리 우리 모든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하나님만이 주시는 놀라운 위로와 평강이 가득하시기를 좋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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