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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公義(공의) (2024년 7월 21일 주일낮설교)

하나님의 公義(공의)

7. 21, 2024

:사도행전13:13-23

說敎:崔仁牧師

 

우리 하나님께는 오직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는 성품이 계시는데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홀로 거룩하시고 영원하시며 어디든지 안 계시는 곳이 없이 다 계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특성을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공의도 하나님만 가지신 특별한 성품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들이 행하는 모든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데 한 치의 치우침도 없이 공평하게 판단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거기에 합당한 심판을 하시고 반대로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하늘 상과 복으로 보상하십니다.

(18: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잘난 자들이 득세하고 못나고 소외된 자들에게는 언제나 불 유익과 고통이 따르게 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공평하시니 세상에서는 무시를 당하나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하게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17-19)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살펴보고 힘들고 어려운 이 마지막 때를 공평하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늘 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말씀을 준비하여 보았습니다. 마음 귀를 기울이시고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울 왕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심판

(삼상15:17-19)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은 인류 최초로 왕이 된 영광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처음에 사울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그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 되자 너무나도 놀라 행구 뒤에 숨을 정도로 순수하고 겸손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삼상10:20-22)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만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행구 사이에 숨었느니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했던 그가 왕위에 오르고 나자 변하였습니다. 교만하여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앞서 인용해 드린 말씀과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거역하고 자기의 뜻대로 행동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유익보다는 자기 자신의 유익을 더 챙겼던 것입니다. 이렇듯 교만의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불순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웠던 사무엘은 이와 같은 사울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고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소중한 하나의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주셨으니까 다시 빼앗으시고 택하셨으니 또한 버리시기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렇게도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진리를 꼭 가슴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것을 다시 빼앗아 가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이와 같이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고 빼앗기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울이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악을 많이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행한 악의 대표적인 실례를 다음과 같은 서너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악은 하나님께서 세워두신 제사장들을 죽인 것입니다.

(삼상22:17-19)

왕이 좌우의 시위자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사울 왕의 세 번 째 악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충성한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자신과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을 쳐들어오는 블레셋과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으로 인해 불안과 근심에 떨고 있었습니다. 오죽하였으면 그 골리앗을 쳐 죽이는 자에게는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까지 하였겠습니까? 그런데 그 어린 다윗이 일어나 사울 왕의 숙적이었던 골리앗을 물리쳐 주었는데 그와 같은 은인을, 그리고 자신의 딸을 주어 사위를 삼았던 다윗을 죽이지 못해 혈안이 되었으니 이것은 왕의 도리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왜 그렇게도 충성스러운 다윗을 죽이지 못해 혈안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가 참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초라하고 부끄러운 소인배의 짓이었습니다.

(삼상18:5-9)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하여 사울 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악을 스스로 자행하여 결국에는 버림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윗의 순종과 하나님의 축복

(삼상24:1-7)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따르다가 돌아오매 혹이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더이다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길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사울과 달리 다윗은 죽음이 경각에 달렸고 3천 명이나 정예된 용사들을 거느리고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사울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으나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만 쫓았습니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는 고백과 같이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아니하고 그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비록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 왕이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세워 두신 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을 해코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105:15)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울과 달리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는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사울을 죽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자신을 배신한 악한 신하일지라도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갈 때 배신자 시므이가 독한 말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삼하16:5-8)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리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와 같은 비루한 시므이에게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이 세상 그 누구도 용서해 줄 수 없는 그런 못된 시므이를 다윗은 용서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군 다윗은 자신을 배신한 요압장군도 용서해 주었습니다.

(삼하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은 자신을 배신하고 왕권을 탈취하였던 아들 압살롬이 자신의 신하 요압 장군에 의해 죽게 되자 이렇게도 비통하게 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자신에게 요압 장군이 찾아와 다음과 같은 말로 왕인 자신을 모욕하였습니다.

(삼하19:4-7)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고 말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왕이 이렇게 다그치는 신하를 그냥 두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장부답게 그 모든 멸시와 모욕을 다 참고 이겨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다윗을 귀하게 여기시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 큰 축복으로 보상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이 그와 같은 배신자들에게 손 하나 대지 아니하고 원수를 사랑으로 품었더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결 같이 그와 같은 대적들에게 친히 분노하시며 원수를 갚아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보복하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59: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2)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라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6: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들 곁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보이지도 않지만 우리들의 모든 것을 다 보시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시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보신 대로 악을 행하면 심판으로 갚으시고 선을 행하면 축복으로 보상하시는 것입니다. 앞서 사울 왕은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은혜도 망각한 채 오히려 그 하나님을 거역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가 이렇게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삼상31:2-6)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 자신도 세 아들들도 신하들도 다 한 날 한 시에 죽는 비참한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순종하였던 성군 다윗은 사울과 정 반대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가 가장 사랑하였던 아내와 아들로부터 임종을 받았으며 자신의 대를 이어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왕권을 유산한 후 편안하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상2:1-2)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라는 말씀과 같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유언까지 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사울과 대비 되는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다 이루어 드리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13:22-23)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그의 자손 중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는 인류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 대를 이어가는 축복으로 보상해 주시고 악을 행하면 대를 잇는 축복은커녕 모든 도모가 끝이 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분명하게 알고 그 하나님 앞에서 다윗과 같이 복을 받아 누리고 또한 자손들에게도 유산하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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